그룹명][암벽,리지정보/인수봉

[스크랩] 인수봉 하늘길

행복한 사연 2008. 3. 31. 09:55

○인수봉 하늘길○

 

 


- 수평선 넘어 가뭇없이 사라지는 조각배

 ◇ 하늘을 향해 뻗어 오른 하늘길 슬랩의 실루엣.


1969년 9월 14일. 인수봉에 하늘길이 열린 날이다. 그 무렵, 평안도 사투리가 쟁쟁하던 이웃집의 소리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철든 아이들의 물 긷는 풍경. 새끼줄 묶은 연탄 한 장. 국수가게에 늘어선 줄. 저녁이면 종종 들려오던 노래 ‘타향살이’. 가난했지만 따뜻한 기억이 더 많은 시절이었다. 시장을 지나 청계천을 바라보며 박석고개를 넘자면 친구가 있어야 했고 한 시간을 걸어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끝없는 공상의 원천이었던 개천가의 고물상과 늘 땅바닥을 관찰하던 길거리. 그러나 너무나 오랜 세월의 강을 건너와 사라진 동무들에 대한 환상은 이제 없다. 대신 ‘덧없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그 자리를 차지해간다.

-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몸짓

“어휴! 이런 바위를 무엇 하려 하냐?”“도대체 길은 어떻게 냈어요?”“몰라 기억도 잘 안나. 이런 데를 올라가라고 하는 사람이 나쁘지.”엄살 끝에 하늘길 첫마디 크랙을 마친 박창규씨의 탄식에 정신이 번쩍 난다. 그 도도한 세월 앞에 ‘물외한인’이 되어버렸는지 등반이고 뭐고 힘이 들어 말도 못한다니. 그에게 과거를 미화하려는 거품이 있을 리 없다. 사실 예전엔 줄사다리를 쓰는 인공등반이었는데 자유등반으로 오르는 지금이 훨씬 힘 드는 것은 당연하다. 첫 마디 크랙에 매겨진 5.10이라는 난이도엔 인공 벽에선 해볼 수 없는 애매한 동작이 숨겨져 있다. 오늘의 선등자인 김장원이 그 동안 운동을 소홀히 한 탓인지 쉽게 치고 나가지 못한다. 왼손을 크랙에 꽂았다가 다시 바꾸어서 오른손을 번갈아 넣어본다.
방법보다는 무거워진 몸이 따라와 줄까 하는 망설임이 엿보인다.


뻑뻑하게 둘째마디까지 크랙을 끝내고 이어서 오르는 김경훈 회장의 헬멧 사이로 예의 그 겸손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게 땀이 삐져나온다. 어깨와 팔 근육이 정상이 아닌 그에게 두 번째 크랙은 수월한 표정이 아니다. 만일 크랙에 확보물이 없다면 난이도와 관계없이 공포감이 몸속 깊이 찾아들 것이다. 크랙 밑에는 또 한 파티를 이끌고 전투태세를 갖춘 권문상·이춘환씨, 그 뒤에 왕봉순씨가 든든히 버티고 있다. 다시 또 박창규씨의 입에서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겠다는 비명 속에서도 동작만큼은 어딘지 학습된 그리고 능숙함마저 엿보인다. 연어와 같은 회귀본능의 동작처럼. 온몸이 찢어지도록 사력을 다해 모천을 찾아와 산란한 후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의 일생. 그처럼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잊혀지지 않는 몸짓들. 언제까지 이런 기억이 남아있을 것인가.

 
 ◇ 남면의 밴드를 지나 첫 슬랩을 오르는 김장원씨.


- ‘우정’이 인수에 그린 최난 코스

1969년 3월, 아직 찬 바람이 완전히 가시지도 않은 때 박정규·박창규·강영택·장경린씨 등은 오봉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2봉에 ‘노을’이란 서정적인 이름의 길을 개척한다.
‘제5봉의 감투 위에 벌렁 누워, 뉘엿거리는 서해의 낙조를 바라보면 담배 맛이 한결 더 하다. 눈앞에 은어 떼가 뛰듯 반짝이는 한강 하류가 시원스레 김포평야를 가로질러 그 너머 묘묘한 수평선으로 어울려드는 그 한가운데를 꽃잎을 깔아 놓은 듯이 벌겋게 물들이며 다가가는 일륜…’시인 김장호는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를 통해 오봉의 노을을 그렇게 노래했었다. 우정의 젊은이들은 다시 두 달 후 인수봉에 매달린다.


그리하여 5월 21일부터 6월 15일에 걸쳐 박창규·강영택·이승균·한남수씨 외에 6명의 지원조가 우정A를 개척해낸다. 여세를 몰아 이틀 후에는 또 다시 박정규·박창규씨 형제가 6월 17,18일 양일 동안 우정B를 개척하는 기염을 토한다. 이때는 이준성·정충구·전진호·차상규·김진호 등이 지원을 맡았고, 김태진·박정규·이건일씨가 기술 지도를 담당했다. 오봉을 시작으로 한 개척의 열풍은 우정A, 우정B 코스를 완성하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우정회원들은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오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인수봉 남면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9월 14일. 박창규·강영택·장경린씨 등 3대 회원이 주축이 되어 드디어 하늘길을 개척한다.


우정이 인수봉에 그린 길 중 최난 코스 하늘길의 개척은 그렇게 순풍에 돛 단 배처럼 이루어 졌다. 그리고 성공을 거듭한 젊음의 열기는 거기서 식지 않았다. 박창규·강영택씨는 신들린 무당처럼 10월엔 동녘길을 개척하고, 박정규·박창규·신유호·김진호·전진호·서승우씨 등이 참여하여 서면 슬랩을 개척하기까지 마치 황금기를 맞은 알프스에서처럼 인수봉을 휘감는 개척등반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얼마나 신이 났을까. 그런데 도대체 기억이 안 난다는 박창규씨의 말은 반어법으로 들어야 하나. 약수터 가는 작은 배낭을 메고 나타난 박창규씨와 장경린씨는 고교 동창이며 인수봉 하늘 길의 주역이자 우정산악회의 3기 회원이다. 두 사람은 강영택씨와 함께 하늘길 개척을 했다. 그리고 운명처럼 직업도 같다.


박창규씨는 양재동에서 한국난원을, 장경린씨는 ‘우정’이란 이름을 걸고 꽃집을 운영한다.
이 연배는 1947년과 1948년생이 대부분인데 6.25 전쟁 통에 유아 시절을 보냈으며 가난을 면치 못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랐다. 잘 뭉치고 의기투합하는 것은 어려운 환경이 주는 동지감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우정산악회에 첫째로 찾아온 전성기는 바로 그런 3·4·5대가 활동하던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중반이라 할 수 있다. 28000원. 이 돈은 1969년 9월 우정산악회원들이 인수봉 하늘길을 오르는데 쓰려던 돈이었다. 계획서에 의하면 하켄 구입에 5000원, 사진촬영과 프린트에 5000원, 자일 구입에 10000원, 동판 제작에 5000원, 그리고 기타 비용으로 쓰일 것이었다. 회원에게 걷을 비용 13000원은 남자회원에 적용되지만 희망에 따라 여자 회원도 환영한다고 적혀 있다. 28000원으로 참 많은 걸 할 수 있을 만큼 돈의 가치가 있었다.


‘공격조와 지원조로 나누어 고도의 기술과 팀워크를 발휘하여 안전제일주의에 입각해서 사고 발생을 미연에 방지한다. 공격조는 6명 이내로 하고 지원조는 파트별로 교대하면서 일부는 지원을, 일부는 암등훈련을 한다. 전체 행동은 막영으로 이루어지며 막영은 수덕암 막영지에서, 경우에 따라서 백운산장 위에서 한다. ’ 이와 같이 대원의 편성과 방법을 계획하여 하늘길 개척에 참여한 회원들은 20명에 달한다. 기술지도에 박정규·김태진·이건일, 리더에 박창규, 대원은 강영택·이승균·이준성·채영민·강태영·차상규·신동석·나도근·장경린·신유균·한남수·박종훈·전진호·이영균씨 등이다. 로프는 8동, 하켄이 70개, 볼트하켄 50개, 드릴 4개, 해머 5개, 헬멧 2개, 레더 6개, 버리는 줄 약간으로 되어있는데 과연 이 장비가 다 쓰였는지 알 수 없지만 4주 만에 개척을 한 것을 보면 우정길 개척에 붙었던 탄력이 살아있던 것은 분명하다.

- 산천은 변했어도 인걸은 의구하다?

과거에만 머물러 있는 전통은 때때로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과거를 살린다면 전통은 엄청난 에너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1960년 10월 3일에 창립을 본 우정산악회는 행사만 하면 벌떼처럼 회원이 몰렸었다. 이제 그 시절은 가고 없다. 새로운 등반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집행부가 과거의 영예에 머무르지 않고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말이 산천은 변했어도 인걸은 아직 의구하길 바라는 것은 아직 버릴 수 없는 소망이다. 경훈·왕봉순·이춘환·권문상·김장원·박창규씨 등이 하늘길 그 긴 크랙을 벗어나서 슬랩으로 접어들 때 저 아래 이월출씨가 날렵해진 몸을 불쑥 내민다. 그는 허성돈 씨와 일명 ‘나물반’으로 통하는 워킹부 회원인 이중하 씨를 대동하고 거룡길과 동양길을 좌충우돌하며 오르는 중이다.


탱크가 사막을 달려가듯 힘차고 여유 있게 오르는 그의 발전된 실력으로 우정엔 일취월장을 버리고 ‘일취월출’이란 사자성어가 생겨났다. “어이구! 이거 나에겐 인수봉과 도봉산이 히말라야나 다름없어요.”땀 흘리고 걷는 것만이 최고의 등산으로 알던 이중하씨는 오늘 인수봉 첫 등반이 무섭기도 하지만 등반의 어려움이 무엇인지 철저하게 깨닫는 중이었다. 오늘 이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하산하면 그는 나물반에서 암벽반으로 스카우트 될 전망이다. “월출이 형님 보면 짜증나요. 선배가 쉬엄쉬엄 가야 하는데 바로바로 올라오니까 그 보다 못하면 안 되잖아요. 조만간 선등자리 뺏길 것 같아요.”다섯째 마디 짠 슬랩의 경험이 아직 없는 김장원씨의 푸념이 계속 이어진다.


“아! 이거 재미없는데.”오버행에 많이 매달린 선수가 의외로 경사가 어중간한 슬랩에서 고전하는 경우가 있는데, 장원씨 역시 무섭다는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도 미끄러지지 않고 오른쪽, 왼쪽, 다시 오른쪽으로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망망대해로 나간 배처럼 작아진다.
“하이 박, 할 만하냐?” 건너편 테라스에서 지켜보던 장경린씨가 박창규씨의 신변을 물어온다.
그는 아직도 하늘길 을 올라주는 후배들의 모습이 대견스럽고 오늘의 만남이 즐거울 뿐이다.
하늘길 슬랩이 그늘 속에 포함되자 회원들의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언제나 마지막에 서길 즐겨하는 왕봉순씨가 드디어 모습을 보인다.

 

야구의 포수, 축구의 골키퍼 같은 역할이 그가 즐겨하는 일인 듯싶다. 그 큼직한 눈에 웃음이 퍼지며 등반이 끝나 감을 알린다. 하늘길 슬랩은 모든 사람들을 다 안아야 할 만큼 넓고 시원하다. 검악과 크로니가 함께 쓰기로 합의한 크랙의 한마디인 25m를 올라 다시 왼쪽의 쌍볼트가 있는 테라스에 진입하는 동안 모여든 우정회원들은 8명이나 된다. 마지막 슬랩을 오른쪽으로 붙어 4개의 볼트를 통과하여 정상에 오르자 귀바위 그림자가 저 아래 구조대를 가리고 있다.
300m 인수봉 하늘로 가는 길은 그 곳에서 온데간데없다. 더이상 볼 것도 잡을 것도 없는 이상 한 잔의 막걸리 생각을 피할 길이 없다. 사라져간 시절도 불씨처럼 되살아난다.

 ◇ 인수봉 하늘길 등반 가이드


- 인수봉 하늘길 등반 가이드


인수봉 하늘길은 1969년 9월 박창규·장경린·강영택씨 등을 주축으로 박정규·김태진·이건일·이승균·이준성·채영민·강태영·차상규·신동석·나도근·신유균·한남수·박주훈·전진호·이영균씨 등이 참여하여 개척했다. 전체 등반 길이는 약 200여m로 총 9마디로 나누어져 있으나 7마디 또는 8마디로 나누어서 등반하는 것이 보통이다. 등반의 출발은 동양길 왼쪽 마애불상이 있는 왼쪽에서 시작하며 종료는 정상 왼쪽 경사진 넓은 바위에서 한다. 루트의 난이도는 첫째 마디와 둘째 마디 크랙이 5.10a, 다섯째 마디의 크랙에서 슬랩으로 넘어가는 구간과 일곱째 마디의 슬랩이 5.10c로 매겨져있다.


- 첫 마디(23m)
마애불의 왼쪽 크랙의 레지를 밟고 오른쪽으로 5m쯤 이동하여 좌향 크랙으로 진입하여 4m 쯤 되는 크랙을 오른다. 예전에는 크랙에 하켄을 박고 오르던 곳이지만 지금은 오른쪽 벽에 볼트가 설치되어 있다. 크랙을 끝내고 오른쪽으로 4m쯤 걸어가서 다시 왼쪽 사선 크랙으로 10m쯤 올라서 마무리 한다.

- 둘째 마디(30m)
손가락과 주먹을 이용한 잼 크랙을 따라 오르다가 다시 오른쪽 크랙으로 진입하여 계속 오른다. 크랙은 다소 길게 느껴지며 몸이 왼편 바깥쪽으로 충분히 나오도록 자세를 취하는 편이 유리하다.


- 셋째 마디(22m)
좌향 크랙을 계속 올라 오른쪽 밴드로 이동한 다음, 크랙과 페이스를 건너 안락한 테라스로 진입하여 와이어가 달린 쌍볼트에 확보한다.


- 넷째 마디(40m)
오른쪽에 설치된 볼트를 따라 7~8m쯤 횡단한 후 20여m의 슬랩이 끝나고 이어지는 플레이크(flake?암벽의 일부가 물고기 비늘처럼 떠있는 바위)를 따라 삼각테라스로 오른다.

- 다섯째 마디(31m)
잼 크랙을 오르다가 왼쪽 사면으로 건너가서 하늘길 슬랩으로 진입한다.

- 여섯째 마디(45m)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자세를 번갈아가며 슬랩을 직상한다.
중간에 설치된 쌍볼트를 이용하여 두 번으로 나누어 등반하기도 한다.

- 일곱째 마디(22m)
왼쪽의 볼트를 지나 밴드를 통과하여 정상으로 오른다.

출처 : 산들바람의 세상구경
글쓴이 : 산들바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