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깃대봉리지○
- 남도 산악인 혼 깃든 깃대봉리지 오르다
월출산(月出山)은 호남의 명산이다. 가슴 출렁이며 건너야 하는 구름다리와 삼중 연속으로 솟아오른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이 이를 증명한다. 또 일단 산에 들어서면 선경(仙境)에 놀란 탄성을 참지 못하는 아름다운 산이기도하다. 이렇다보니 골과 계곡 그리고 능선을 가리지 않고 빼곡히 들어찬 등산로와 바위길은 이미 초만원이다.
하지만 그간 숨어있는 마지막 보루가 있다. 바로 너른 남도 들판 내다보는 깃대봉 오르는 리지다. 월출산은 참 멀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시속 120킬로미터로 5시간을 달려도 아직 영암땅은 멀다. 희뿌연 아침 안개가 지글지글 타오르는 태양으로 인해 벗겨질 쯤 간신히 월출산에 닿았다.
“많이 늦었습니다.”
“아침은 먹었어. 그래도 날씨는 참 좋네.”
포스코 광양제철소 그루터기 산악회 김병석(46세)씨와 2년 만의 조우였다. 그를 처음 본 것은 2000년 파키스탄에서였다. 포스코 낭가파르밧(8125m) 원정대 부대장으로 원정에 참가한 그를 만난것이 첫 만남이었다. 당시 기자는 첫 해외원정이라 여러 가지 도움을 이들에게 받았다.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묘해 목화에서 실 뽑듯 끈질기게 이어진다. 그와의 인연도 마찬가지다. 물론 그 이면에 항상 산이 있었다.
이미 늦은터라 우리는 빨리 산행에 나서야 했다. 천황사 초입에서 매표소 쪽으로 가지 않고 영암인공암벽장 쪽으로 200미터쯤 오르자, 우측에 기도원 가는 길이 보인다. 300미터 정도 올라 기도원이 보이는 도롯가에 차를 주차하고, 장비를 챙겨 깃대봉리지 초입으로 출발했다. 기도원 마당에서 월출산을 바라보면 화장실 우측으로 칠치폭포로 가는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길을 따라 15분정도 오르자 매봉으로 연결되는 ‘구절초리지(칠치폭포 우측 리지)’ 입구다. 여기서 5분 정도 더 가니 칠치폭포가 나타났다. 도로에서 20분 거리다. 이번 취재에 동참한 김정현(40세·광양제철소 그루터기 산악회)씨는 칠지폭포에서 식수를 보충한다. 칠지폭포 주위로는 늦가을이지만 아직 남아있는 빛 고운 단풍과 참하게 떨어지는 칠지폭포가 가을 산행의 정취를 더한다. 취재진은 이곳에서 간단하게 간식을 먹고 칠치폭포 왼쪽으로 등반하기 위해 출발했다.
김병석씨는 개척 후, 바쁜 일상에 쫓겨 일 년 만에 이곳을 찾았다며 빠른 걸음으로 리지 시작점으로 향했다.
아침에 안개가 자욱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안개는 사라지고 태양의 이글거림이 다가온다. 추위를 걱정했는데 도리어 더워서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흐리던 시야도 트여 아래로 영암인공암벽장이 멀리 바라보인다.
가을 햇살에 잘 마른 바위는 상쾌한 감촉을 느끼게 한다. 15분 정도 완만한 능선길을 따라 걷자 본격적인 등반이 시작되는 5미터 높이의 첫 등반 구간이 나온다. 취재진은 여기서 작비를 착용하고 김정현씨의 선등으로 등반을 시작했다. 빠르게 올라와선지 제법 고도감이 느껴진다. 또 주위로는 늦은 단풍시즌이지만 아직 사르라지지 않은 붉은 빛을 뽐내며 청명한 가을 하늘의 깃털 구름과 평화로운 조화를 이룬다.
첫 마디는 짧지만 90도 오버행이라 양호한 홀드를 잡고 과감하게 일어서는 것이 중요했다. 무난한 동작으로 김정현씨가 첫 구간을 넘어 공제선 너머로 사라진다. 이어 길은 얼마간 평탄하게 이어졌다. 5분 정도 오르자 이번에는 슬랩과 크랙을 올라야 하는 두 번째 마디가 우리를 반긴다. 김병석씨가 완만한 슬랩을 지나 제법 힘든 크랙을 올라선다. 길이는 30미터 정도로 난이도는 5.8급 정도였다.
이곳에 올라서자 다시 루트는 세 번째 마디로 이어진다. 가파른 슬랩을 올라 우측 턱진 바위를 넘어서는 구간이었다. 제법 부담감 있는 등반 루트다. 김정현씨가 장비를 가지런히 챙겨 출발한다. 슬랩을 무사히 지나 우측 직벽으로 진입해 다리를 높이 올리고, 마치 레이백 등반하는 자세로 어려운 구간을 잘 넘어간다.
이 구간을 넘어서자 다시 슬랩과 크랙이 이어진다. 등반자 뒤로는 한층 더한 고도감으로 인해 남도의 너른 들판이 한순간 왈칵 다가온다. 쪽빛 하늘 그리고 형형색색의 단풍과 가을 들판이 하나로 어우러져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다.
다시 루트는 능선 위 초코칩같이 박힌 바위지대로 이어졌다. 등반과 워킹 그리고 또 등반의 연속이다. “좀 쉬었다 가요”라는 말이 목젖까지 올라왔지만 오늘 취재에 지각한 기자가 짧은 해를 걱정하는 그들 앞길을 막을 방법은 없었다. “임기자 저위 능선까지 가서 점심 먹자.” 김병석씨는 기자의 쉬고 싶은 마음을 알았는지 쉴 곳을 명확히 해 목표의식을 불어넣어 준다. “그래 저기 까지만 가자”고 속으로 다짐하며 강철 같은 체력의 남도 사내들을 따라 다시 등반에 나섰다.
능선이 끝나자 막다른 곳에 10미터 높이의 반침니 바위지대가 나타났다. 김정현씨는 빠른 등반으로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부담감 있는 구간을 잘도 올라가 등반을 마무리한다. 이어 김병석씨도 등반을 끝내고 기자에게 빨리 오라고 손을 흔들어 준다. 마치 그 모습이 친형제 같이 정겹다.
아침도 못 먹은 기자는 빨리 능선에 올라서고 싶었지만 한순간 걸음을 멈췄다. 취재진이 능선을 넘어서자 그간 멀리 보이던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 삼형제가 그 가파른 몸뚱이를 우뚝 치켜세운다. 일기당천 기센 암봉의 행진에 넋을 읽고 감상하는 사이 김병석씨는 능선으로 향하기 전 마지막 마디를 오르기 시작했다. 세 개의 큰 봉우리가 연속된 코스로 리지 등반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구간이었다.
이곳에서 10미터 정도 하강하자 오늘의 목표인 깃대봉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능선 위에 섰다. “형! 밥 먹죠.” 능선에 도착한 후 기자의 첫 마디에 김병석씨는 웃으며 힘들게 들고 온 김밥과 홍삼 액 그리고 며칠 전 일본 출장에서 사가지고 온 과자까지 한 상 판을 벌인다. 순식간에 김밥을 해치우는 모습을 보고는 “기자도 분명히 3D 업종이야. 몸으로 일하고 글로 보여줘야 하니 얼마나 힘들겠어.” “맞습니다.” 김병석씨 말에 무조건 동의하고 다시 홍삼액을 따서 마셨다.
그제야 에너지를 보충한 몸이 정상 반응을 보인다.
“이제 가시죠! 준비는 끝났습니다.”
“그래 어서 가세. 가을해는 짧으니…”
아침과 비교해 하늘은 더욱 높아졌다. 그 높이를 감지할 수 없을 정도다.
잠시 하늘을 보는 사이 두 명의 등반가들이 다시 벽 속으로 사라졌다. 이제 우리의 목표인 깃대봉이 멀지 않다. 표지기를 따라 급경사를 올라서자 오늘 등반의 마지막 코스이자 하이라이트인 주먹이 들어갈 정도의 크랙이 취재진의 앞을 막아선다. 바로 등반이 시작됐다. 김정현씨가 거친 신음을 토해 낸다.
난이도는 5.9급 정도지만 온몸으로 비벼야 하는 속칭 ‘막노동 길’이다. 바위 면이 살아 있어 조금만 바위가 손에 스쳐도 영광의 상처를 준다.
보기에는 직벽이 아니었지만 막상 등반을 시작하니 몸이 뒤로 젖혀지는 오버행이다. 30미터를 꾸준히 오르자 바로 깃대봉 정상이다. 정상의 감흥도 잠시 기념사진 찍고 바로 25미터 하강을 시작했다.
이곳 깃대봉에서 정면으로 이어지는 남은 리지 구간이 있었지만 우회해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거 마지막 남은 홍삼인데 임기자 먹어.” “아이~ 전 괜찮아요. 형님 드세요. 이제 나이도 있으신데.”
“아니 임기자 먹으라니까. 몸이 허해진 것 같은데.”
하산하는 내내 정겨운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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