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명][암벽,리지정보/설악산

[스크랩] 설악산 토왕골 솜다리 추억

행복한 사연 2008. 3. 31. 10:06

○ 설악산 토왕골 솜다리 추억 리지


 

옛"날 토왕골에 선녀가 살았습니다. 마을의 한 소년이 선녀를 보고 동네에 와서 얘기를 했습니다. 마을의 모든 소년들이 선녀를 만나러 오르다가 다 떨어져 죽었습니다.

 

선녀는 소년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너무 슬퍼서 솜다리를 피워놓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저쪽 ‘별을 따는 소년들’ 리지는 소년들의 입장에서 이름을 지은 것이고, ‘솜다리 추억’ 리지는 선녀의 입장에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산빛 산악회 심종혁(50세)씨가 산악회에서 솜다리 추억 리지를 개척하고 이름을 공모할 당시 ‘별을 따는 소년들’의 그 별이 솜다리였다 싶어 응모하여 당첨됐다고 한다.

“지금 등반하는 김문섭씨가 당시 딸을 낳았는데, 딸의 별칭이 솜다리예요.”


김문섭(37세)씨가 25미터쯤 되는 첫 마디 전면크랙을 선등하고 있다. 홀드는 울퉁불퉁 튀어나와 잡을 곳이 많아 등반 속도가 빠르다. 로프가 금세 절반쯤 빠져나간다.

“전면 벽은 무명봉입니다. 암릉 너머가 선녀봉이고, 개척할 때 솜다리가 엄청 많았어요. 앞으로 솜다리봉이라고 부르죠.”


‘솜다리봉’이라 명명된 수직 벽은 우리 앞에 150여 미터나 곧추서 있다. 리지라기 보다 차라리 암봉이다. 토왕골 선녀봉에서 뻗어 나온 암릉이 침봉(솜다리봉)을 이루며 곧추선 형태다. 총 6마디는 솜다리봉을 등정하며 마친다. 이후 선녀봉까지는 쉬운 암릉길이다.

 

150여 미터 곧추 선 토왕골 솜다리봉

왼쪽에 ‘경원대’ 리지와 오른쪽의 ‘별을 따는 소년들’ 리지 사이에 있으며, 거의 직벽에 가까운 암봉이 선녀봉과 암릉으로 연결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노적봉이 한 눈에 보이잖아요. 저기 남동벽에 ‘그들과 함께라면’이라고 전용학씨가 개척한 길이 있고요. 앞쪽에 능선 따라 가는 길이 ‘4인의 우정길’ 리지예요.”

 

등반대장인 오윤묵(40세)씨가 뒤편에 가파르게 솟은 노적봉을 바라보며 산빛에서 개척한 길을 소개해 준다. 노적봉에 길을 개척할 당시 정상에서 바라본 솜다리봉이 한 송이 꽃처럼 너무도 아름다워 리지 개척에 나섰다고 한다.

 

“70년대에 부산외대에서 인공으로 초등한 것 같아요. 그런데 올라가 보니까 트랑고 볼트가 박혀 있었어요. 70년대에는 그런 볼트가 없거든요. 이후에도 누군가 올라간 거죠.”

 

산빛산악회에서 선녀봉까지 리지를 개척한 후 별을 따는 소년들 리지와 연결 시켰다. 이후 산빛산악회에서 리지를 개척하는 것을 본 그린산악회에서 재등을 했다고 한다.

김문섭씨가 고정 볼트와 프렌드 하나를 이용해 선등을 완료하고 로프 한 동을 고정하자 정종원 기자가 주마링하고, 심종혁, 오윤묵, 김상현씨가 등반을 하며 뒤를 따라 올랐다.

 

둘째 마디는 첫째 마디와 연이어진 벽이다. 25미터쯤 책을 펼친 것과 같은 디에드르이며, 그 가운데 길쭉하게 난 크랙과 주변의 홀드를 이용해 올라야 한다. 둘째 마디에 올랐을 때 이미 김문섭씨가 벽에 달라붙어있었다.

“거기다 하나 박어, 오른쪽에도 큰 거 있잖아.”
“여기는 난이도 매기기가 어려운 게요. 난이도는 쉬운데, 손 홀드를 잡는 게 불안해요.”
솜다리 추억 리지 개척자인 오윤묵씨와 김상현씨가 번갈아 가며 훈수를 든다. 선등자는 이미 상단을 거의 올라간 후다. 둘째 마디에 올라서니 테라스가 길쭉하게 뻗어있다. 볼트에 자기 확보를 한다.

 

“세 번째 마디가 일명 ‘상현아~’ 루트예요.”
그 연유인즉 이렇다. 전용학씨가 선등으로 올라가는 것을 김상현씨가 확보를 보고 있었다. 그때 테라스의 볼트에 확보하고 있던 오윤묵씨가 로프를 사릴려고 ‘상현아~’하고 부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낙석이 테라스 볼트지점에 떨어져서 운 좋게 살아났다고 한다.

심장의 고동조차 멎는 3마디 째 수직벽

김문섭씨가 한참동안 벽에 매달려 있다.

 

 넓은 크랙은 가늘게 좁아지다가 사라진다. 3번째 볼트에서 4번째 볼트 지점, 솜다리 추억 리지의 크럭스다. 정제되고 절제된 심장의 고동소리가 토왕골을 울린다. 그것은 로프로 맺어진 우리들의 심장소리인지도 모른다. 그는 38미터 수직벽에서 난이도 5.11b(A0)급의 페이스를 자유등반하고 있다.

 

“우리가 처음 길을 내고 나서 장성수 부등반 대장이 와서 등반했는데 헤맸어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고수인데 무진장 추락을 먹었죠. 저 친구는 전등반대장인데, 5.13급으로 우리산악회 최고 고수죠. 근데 문섭이 보고 세 번은 추락 먹을 거라 장담했죠. 술 내기를 했던가?”

 

“텐션”
2차 실패한 김문섭씨가 로프에 의지해 호흡을 가다듬는다.
“거기서 루트 파인딩을 잘해보라고.”
토왕골을 타고 바람이 불어닥친다. 솜다리봉에 매달린 선등자와 테라스에서 마냥 기다리는 우리들을 훑어간다.

 

골 바람은 토왕성 폭포에 그대로 곤두박질치듯 매섭다. 하늘에서 그대로 떨어지는 듯한 토왕성 폭포는 하나의 성을 연상케 할 만큼 대단히 웅대하다. 주변의 모든 침봉들을 집어 삼킬 듯이 압도한다. 국내 알피니스들의 피를 끓게 한 바로 그 관문처럼 버티고 있다.

 

오른쪽 토왕성 폭포를 배경삼은 별따는 소년 리지로 한 패가 오르고 있다. 왼쪽 경원대 리지에도 한 팀이 보인다. 다들 산빛산악회 팀이다. 산빛산악회 취재겸 팀산행으로 전날 자정이 되어서야 토왕골을 찾았다. 그들은 새벽까지 오고 가는 정담과 술잔으로 뜨거운 피와 그리움을 삭인 후 간신히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깊은 계곡에 새벽이 밝아오자 눈을 떴다. 그 순간 오윤묵 대장은 새빨간 단풍이 눈앞에 어른거려 선녀궁으로 착각했다고 한다.

 

김문섭씨가 다시 등반에 나서자 침묵이 흐른다. 고독한 바람만 토왕골로 몰아칠 뿐이다. 왼쪽 페이스로 신중하게 발끝을 옮긴다. 조금 전에 내려서야만 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팬 서비스 한 번 해야지.”
누군가 외친다. 추락해도 자존심 상할 것 없으니 한 번 해보라는 말이다. 긴장감이 다소 해소된 듯 선등자는 미세한 스탠스를 잡고 크럭스를 넘어선다.

 

“어휴, 힘들어!” “오케이.”
“왼쪽 슬링에 확보해야지, 12시 크랙은 위험할 것 없어, 낙석만 조심해.”
오버행 턱을 넘어서 4마디까지 오른 김문섭씨가 로프 한 동을 내린다. 회색 로프를 이용해 심종혁씨가 주마스텝으로 등반준비를 한다. 그리그리와 주마를 양손에 쥐었다.

 

“신부님 주마스텝을 왼발에 끼세요. 오른손으로 당겨야 하니까 그래야 밸런스가 맞아요.”심종혁씨는 서강대학교 교수로 예수회 신부다. 한 발 두 발 주마링을 하면서 스텝을 옮길 때마다 무척이나 밝은 표정이다. 힘찬 응원이 절로 가슴속에 가득찬다.

 

 어느새 하늘을 향한 신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주변의 침봉 삼킬 듯 압도하는 토왕성 폭포 오윤묵 등반대장이 리지화를 벗고 암벽화로 갈아 신는다. 오른쪽 크랙에 붙어 레이백 자세를 취하며 2번째 볼트 지점까지 무난히 오른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초크를 묻혀가며 크랙에 발을 끼워 넣고 오름짓을 한다. 그러나 세 번째 볼트를 지날 즈음 결국 자유등반을 포기하고, 볼트와 슬링을 이용하여 인공으로 올라선다.“길을 낼 때 인공 등반하여 고정 로프를 설치했는데, 비가 와서 거의 한 달간 그대로 방치해두기도 했어요.”


김상현씨가 마지막으로 초크가루가 묻고 돌에 닳은 까칠한 손등으로 땀을 훔쳐내며 올라서며 말한다.

다섯 번째 역시 둘째 마디와 유사한 책을 90도로 펼친 듯한 벽에 짧은 크랙이 나있다. 이곳을 넘어서면 암릉이 솜다리봉까지 이어진다. 6마디 시작지점 앞 널찍한 테라스에 다들 모인다.

“이곳에 서면 양쪽이 다 내려다보여 좋아요.”
설악은 단풍이 절정이다. 발아래 붉은 세상이 펼쳐진다. 노적봉과 그 너머 봉화대, 오른쪽으로 달마봉이 햇빛을 받아 불꽃처럼 타오르며, 울긋불긋한 단풍과 어우러진다.

암릉을 타고 솜다리봉에 올라선다. 테라스 하나를 넘어 올라서면 정상이다. 처음부터 같이 했던 토왕성 폭포가 발아래다.

 

솜다리 추억 리지는 언제나 뜨거운 정으로 서로의 몸을 로프로 엮은 산빛산악회 자일의 정이 일궈낸 길이었다. 정상에서 15미터쯤 하강을 하면 쌍볼트가 있는 비상탈출 하강 지점에 내려설 수 있다. 오버행만 55미터라고 하니 그 고도감을 감수해야 할 듯싶다.

 

이곳에서 침니를 클라이밍 다운하면 30미터쯤 되는 날등이 나온다. 각자 암릉을 따라 선녀봉 정상을 향해 간다. 아직 땀방울이 식지 않았다. 선녀봉을 향해 더 많은 땀방울을 흘려야만이 저 정상에 닿을 수 있다. 암릉은 등반하기 쉽지만 풍화가 심하다.

 

소나무와 잡목이 들어찬 정상에 도착한다. 선녀는 하늘로 날아가고 암봉은 어디론가 사라진 느낌이다.

정상을 넘어 소나무 숲 사이의 가파른 흙길을 10여 미터쯤 내려선 다음 오른쪽 바위를 넘어 클라이밍 다운하면 별을 따는 소년들 리지와 만나는 안부지점이다. 건너편에는 갈라져 등반했던 산빛 팀이 마지막 칼날 리지를 건너고 있다.

 

별 따는 소년들 리지로 올라서 암릉을 건너고 나니 안부지점에는 온통 새빨간 단풍 숲이다.

산빛이 지는 가파른 협곡을 내려선다. 토왕골은 이미 해가 넘어간 지 한참이다. 계곡위로 드리운 단풍의 붉은 기운도 거무스름하다. 깊고 긴 계곡 산줄기를 돌고 돈다. 토왕폭을 다시 만날 그날 까지 솜다리의 추억을 가슴에 가득 안고 하산을 재촉한다. 그리운 벗 남겨두고. [글|강윤성 기자 사진|정종원 기자]

출처 : 산들바람의 세상구경
글쓴이 : 산들바람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