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케이블 카는 성미 급한 상춘객들로 왁자지껄한 장바닥이다. 정군목(30세. 대전 중경OB), 이희진(27세. 대전 중경OB), 박동영씨(38세. 개척산악회), 그리고 장기자와 함께 케이블카에 올랐다. 약 1킬로미터 거리를 5분만에 오르는 케이블 카에서 내려다보는 대둔산은 아직 스산한 모습이다.
봄이면 바위 틈새마다 수놓듯 꽃이 피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우거져 생명력이 넘치는, 가을이면 만산홍엽으로 온 산이 불타는 화려한 산, 한겨울 흰 눈과 검은 바위와 독야청청한 바위틈의 노송들로 한 폭의 동양화를 그리는 대둔산도 아직은 계절의 틈에 낀 어정쩡한 모습이다. 지난 겨울은 꽤나 더디게 간다.
올 봄 역시 퍽도 게으르다.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의연한 아름다움이다. 4월 중순에 찾은 대둔산은 아직도 미적대는 겨울의 끝 언저리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이야 다 녹았지만 골골마다 불어오는 바람은 겨우내 손끝 피부 얇아진 등반가의 손가락을 더욱 곱게 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떠나지 않는 겨울을 원망한댔자, 또 게으른 봄 탓만 해 보았자 오늘 등반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리라.
왁자지껄한 장바닥을 쫓기듯 빠져나와 ‘우정길’(「사람과 산」99년 8월호 참조)들머리를 지난다. 당시 촬영을 담당했던 장기자는 지독한 고생으로 다시 우정길 리지는 하고 싶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장기자는 오늘 등반하게 될 연재대 리지로 인하여 ‘다시는 등반하고 싶지 않은 길’의 대상이 이제 바뀌게 되리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연재대’ 리지는 윤건중씨(49세. 충남대OB)가 87년부터 개척하기 시작해서 89년에 완성한 제법 역사가 있는 리지였다. 86년 랑탕리룽(7234m) 원정을 다녀온 후 이 리지를 개척하기 시작한 윤씨는 늘 산으로만 향하는 자신을 걱정하며 보내야 하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연재대’ 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인의 이름(오연근)에서 ‘연’자, 아들(석재) 이름에서 ‘재’자를 따 붙인 것.
첫발 떼기조차 어려운 첫마디
그러나 그 이름처럼 부드럽고 낭만적인 길이 아닌 이 리지는 제대로 등반할 수 있는 등반가들이 드물었고, 찾는 이들이 거의 없어 잊혀져 가고 있었다. 이 리지를 99년부터 다시 보수하고 정비한 사람이 이기열씨(34세. 대전 중경OB)와 오늘 동행한 정씨였다.
아직 완전히 마무리되지 않은 탓에 정씨는 점핑 세트와 볼트까지 챙겨 등반에 나섰다. 용문골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약 10분 가량 걷다보니 정면으로 엄지손가락을 곧추 세운 듯한 장군바위가 나타난다. 장군바위 이르기 약 100미터 전 왼편으로 정상능선과 이어지는 등산로가 나타나고 그 등산로 입구에 선 바위에서 연재대의 들머리를 찾을 수 있었다.
첫마디는 5미터 가량의 바위를 올라서야 한다. 그 위에 버티고 선, 뒤로 넘어질 듯한 바위가 바로 연재대의 첫마디다. 전체 구간에서 가장 어려운 마디가 바로 이 첫마디다. 작은 세로 크랙들이 이어지는데 등반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버행으로 이루어진 첫마디는 첫발을 떼기조차 쉽지 않다. 선등에 나선 정씨가 자유등반이 여의치 않은지 슬링을 걸고 인공등반을 시도한다. 볼트가 촘촘하게 박혀 있지만 인공등반으로도 결코 쉬운 마디가 아니다. 그의 ‘끙끙’ 대는 소리가 들린다.
이윽고 촬영 때문에 주마링으로 오르기 시작한 장기자는 시작부터 허공에서 대롱거리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한참을 오른 후에 시작되는 마디인지라 고도감 또한 상당하다. 처음 개척할 당시 암봉 정상주위로 매가 많이 날아들어 매바위라 이름지었다는 이 첫마디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작도 제대로 못한 채 포기하고 돌아가는 리지로 남아 있었다. 어렵사리 첫마디를 마치고 올라가 보니 정씨는 널따란 바위에 길게 누운 채 시쳇말로 주욱 뻗어있었다.
그만큼 등반이 어려운 곳이었다. 이윽고 박씨와 이씨가 올라오고 장기자까지 무사히 첫마디의 등반을 마쳤지만 다들 사색이다. 햇볕이 제법 따스하게 내려 쬐기 시작했지만 바람은 여전히 싸늘하다. 건너편 케이블 카 하차장 옥상에서는 아직도 왁자한 5일장이 한창이고, “저기 봐라”하는 어느 장돌뱅이의 외침까지 들려온다.
첫마디를 마치면 바로 뒤로 솟은 암봉이 또 하나 있지만 길은 왼편의 바위 턱으로 이어진다. 이어서 나타나는 두번째 마디는 슬랩으로 쉽게 올라 설 수 있었다. 종료지점에는 넓고 평평한 너럭바위가 있어 사방 조망이 시원하다. 이곳에서도 여전히 장터의 소음은 들려온다.
앞으로 가야할 바위를 건너보는데 또 한번 장기자의 엄살이 시작된다. “우와, 저길 어떻게 가.” 바로 연재대 리지에서 또 하나의 악명 높은 사자크랙이었다. 개척 당시 갈기를 세운 사자머리의 형상으로 보여 사자크랙이라 했다는데 상상력이 모자란 탓인지 기자의 눈에는 전혀 사자로 보이지 않는다. 개척자였던 윤건중씨는 무척이나 감성적이고, 맑은 눈의 소유자였나 보다.
선등자는 5.11급 실력 갖춰야
사자크랙을 오르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결코 쉽지 않은 크랙을 넘어서야 했다. 선등을 도맡은 정씨가 왼쪽 레이 백 자세로 힘겹게 넘어선다. 크랙 끝 부분에서 테라스로 넘어서는 지점의 동작이 미묘하다. 종료지점에는 나무에 확보용 와이어를 걸어놓았다. 케이블카 하차장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붐비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우정길 리지를 이루는 바위들이 취재팀과 나란히 산정으로 오르고 있었다.
어디선가 “까아악, 까아악”하는 까마귀 소리가 들린다. 드디어 사자크랙. 폭이 약 10센티미터가 넘는 크랙이 직선으로 뻗어 있다. 오버행을 이룬 이 넷째마디는 크랙에 너무 의존하면 등반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크랙 좌우의 홀드를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등반의 관건. 역시 정씨가 선등으로 나선다.
정씨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오르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결국 캐머롯 3호를 크랙에 설치하고 인공등반으로 힘겹게 올라섰다. 촬영용 로프만 설치하고 다시 하강하여 자유등반으로 재 시도하라는 기자의 주문에 정씨는 괴로운 기색이 역력하다. 다시 장기자의 괴로운 쥬마링. 까마귀 울음소리는 장기자의 입에서도 터져 나왔다. 다들 녹초가 되어 사자크랙을 넘어섰다.
사자크랙 위에 올라서면 동쪽으로는 적상산이 그 이름처럼 치마를 둘러친 듯 넓은 오지랖으로 자리잡고 앉았다. 남으로는 덩치 큰 운장산이 우뚝 솟아 버티고 있다. 사자크랙 뒤로는 굵은 소나무 둥치와 건너편 암봉 이마까지 와이어가 연결되어 있었다. 그 거리가 5미터에 불과하지만 하강했다가 다시 등반을 하자면 꽤나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할 것이다. 루트를 재정비하는 동안 아예 티롤리안 브리지용 와이어를 설치해 논 것이다. 강철 와이어인지라 카라비너만으로는 원활하게 미끄러지지 않을 뿐더러 그 소리에 정나미가 뚝 떨어진다.
기자의 배낭을 뒤지니 마침 도르래 하나가 나온다. 늘 쓸데없는 장비들로 무겁기만 하던 장비보따리에서 모처럼 유용한 것이 하나 나왔다. 이곳을 개척한 사람과 보수한 사람들의 애정이 물씬 풍겨나는 짜릿한 티롤리안 브리지였다. 장기자의 푸념이 또 시작된다. “무슨 리지가 이래? 우정길은 아무것도 아니었네, 이건 대둔산 남벽이야!” 사실 연재대 리지는 5.11급 정도를 선등할 수 있는 실력이 있어야 등반이 가능하다. 티롤리안 브리지로 건너온 후 커다란 암각에 와이어로 하강용 고리를 고정해 놓은 곳에서 약 10미터 가량 침니를 따라 하강을 해야한다.
걸어 오른 하늘, 기어 오른 하늘
하강을 마친 후 다시 10미터 가량 잡목을 헤치고 가 두 개의 암봉사이로 들어서면 다시 10미터를 하강 해야한다. 이곳에 정씨가 하강용 볼트를 설치했다. 해머소리가 이골 저골에 메아리친다. 이제 거리가 멀어진 것인지 아니면 파장을 했는지 장터의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이 볼트 설치로 연재대의 보수는 마침내 마무리되었고 드디어 산이 조용해졌다. 바위 사이마다 한 그루씩 자라나는 소나무는 그대로 값비싼 한 그루의 분재며, 한 폭의 동양화를 이룬다. 정씨는 새로 설치한 볼트에 손때 묻은 그의 카라비너 하나를 걸어둔다. 다섯째 마디는 등산로에서 시작된다. 그리 어렵지 않은 슬랩바위를 이희진씨가 선등에 나선다.
부드럽고 유연하게 금세 올라서며 시야에서 사라진다. 대학 4학년인 이씨는 저녁 수업에 참석해야 되는데 자꾸만 늦어지니 마음이 급한 모양이다. 이끼가 껴 제법 미끄러운데도 어느새 올라가 버렸다. 마지막 고비 여섯번째 마디는 보기에만 쉬운 20미터 직상 크랙이다. 정씨가 또다시 선등에 나서 온갖 재밍을 하고 여러 차례 자세를 바꾸어 가며 힘겹게 올라섰다. 마침내 연재대 리지를 새롭게 보수하고 또 등반까지 마친 것이다.
장기자는 이번 기념촬영에는 자기도 꼭 나와야겠다며 배낭과 돌들을 주워 모아 카메라를 설치했다. 어렵고 힘든 곳을 오른 자신이 대견스럽다며 으쓱한다. 마지막 하강은 연재대 리지가 주는 커다란 선물이다. 25미터에 달하는 침니 하강은 독특한 경험이었다. 마치 하늘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하강을 마치고 약 15분 가량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니 바로 리지 시작부분이다. 허망하다. 15분이면 오를 수 있는 곳을 우리는 하루종일 온몸 부대끼며 올랐으니….
그러나 걸어서 올라 바라본 하늘과 기어서 오른 후 바라본 하늘은 분명히 다르다. 하산 중 뒤돌아 바라본 대둔산은 수많은 암봉의 창으로 파란 하늘을 쿡쿡 찌르고 있었다. <글·윤대훈 기자 사진·장병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