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설악산 소승폭포 좌우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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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말라야에 숨은 상어지느러미를 오르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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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승폭포 좌벽 인천상륙작전(5.8/A3)을 등반 중인 장선태씨. 길을 찾는 것은 등반자의 몫이다. |
러프(RURP·Realized Ultimate Reality Piton). 의역하면 ‘불가능한 것을 실현하게 해준 피톤(하켄)’이라는 뜻의 이 장비는 미국 산악인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가 1960년대 초반 요세미티 캐트 피너클(Kat Pinnacle)을 등반할 때 처음 고안해 사용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려운 인공등반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러프는 우리 산악인과도 인연이 깊다. 그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시절 도봉산 주봉 T-오버행에서 사용하며 처음 한국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당시에 함께 등반했었던 MRS(Mountain Research Society·산악연구회)의 백경호씨에 따르면 첫 번째 시도에서 기존 장비로 오버행을 넘어서지 못했던 취나드는 산을 내려와 러프의 도면을 그려 대장간으로 달려가 밤새 망치질을 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다시 도전해 등반에 성공하며 취나드는 그 장비에 ‘러프’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로서는 분명 불가능한 것을 실현 가능케 해준 고마운 장비인 것이다. 주로 가로로 갈라진 가는 크랙에서 사용되는 러프는 그 생김새가 그 전에 쓰이던 다른 하켄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흔히 쓰이는 8자 하강기는 데상드르알랭이라는 초보적 하강기구에서부터 발전했고, 피켈이나 아이스바일은 알펜스톡에서 개량되어 온 것이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러프도 분명 어디에선가 닮은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이와 비슷하게 생긴 옛 장비는 본 적이 없다.
- ‘발상의 전환’과 알피니즘
이러한 사실에서 하나의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데 러프가 단지 어려운 인공등반의 척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 등반의 정신까지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등반에 있어 ‘발상의 전환’이라는 말로 요약된다. 특히 인공등반은 다른 형태의 등반보다 그 방식이 자유로워 하나의 등반선이 정해지면 꼭 그곳에 정해진 장비를 설치하거나 규칙적인 동작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등반자 나름의 연구와 고민, 그리고 경험을 토대로 난관을 극복해야하는 매력이 있다. 하켄이 부족하면 크랙에 숟가락을 두드려 박고 올라도 될 것이고, 등강기가 없다면 신발 끈을 풀러 프루지크 매듭을 하고 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자유로운 등반기술을 토대로 사람들은 보다 높고 험한 벽을 오르려 시도하고 있는데, 그것은 대부분 ‘거벽등반’이라는 행위로 초점이 모아진다. 올봄 한국산악회에서 발간한 연보 <한국산악>에 ‘거벽등반의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의 특집기사가 있었다.
거벽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의 한국산악인들은 평균 경사 60° 이상, 등반 고도 1000m 이상의 벽을 거벽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었다. 거벽에 대한 외형적 결론뿐 아니라 ‘한국 거벽등반의 현실과 이상’이라는 서문에서 한국산악회 산악기술위원회 유학재 이사는 ‘광의적 의미의 거벽등반이란 대상지의 새로움이나 등반방식의 어려움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물질적으로도 자유등반의 정신에 위배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발상의 전환’에서 시작된 등반 활동은 오르는 법 뿐 아니라 오르는 과정까지 하나의 기조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한국산악사에서 개인이 추구하는 등반과 그 준비과정이 일치하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거벽등반 뿐 아니라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력으로 등반대를 꾸리지 못하고 때로는 순수한 산악활동을 벗어난 여러 가지 타이틀을 내걸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등반에 소모되는 경비의 문제 때문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높이’에 매달려온 자본주의 사회의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 ‘높이’란 곧 상업적 가치와 적당히 부합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디어와 언론에는 그 높이를 ‘정복’하는 것이 마치 달 표면에 발자국을 찍는 일처럼 왜곡되어 표현되어지기도 했다.
무상의 산을 오르는 모든 등반의 가치란 사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이고 그 경험의 공유 또한 등반에 관심 있는 극소수를 위한 것이다. 말하자면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일이 점심 굶는 아이들의 배고픔을 채워줄 수 없듯, 등반활동에서 공익의 목적을 찾기란 힘든 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알피니즘이 거벽등반까지 발전되어 온데에는 ‘등로주의’라거나 ‘머메리즘’처럼 늘 ‘진보’만 해야 하는 숙명이 바탕에 있었다. 등로주의를 따라야 하는 이유가 그 과정의 어려움에 있는 것이라면 굳이 산의 험한 길을 택해 오르려고 할 때 거기에 현실적이고 상업적인 부가가치를 가져다 붙이는 일은 논리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모순이 곧 현실이 되어야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환경에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실질적으로 거벽등반을 시도한 지는 채 30여 년밖에 되지 않는다.
채석장이 등반대상지가 될 만큼 열악한 자연환경과 서구에 비해 후발주자로 시작한 산악활동 탓에 세계적으로 현대 알피니즘의 주류로 자리잡아가는 고산거벽등반이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확고한 독립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고산거벽으로 향하는 원정대는 희소성을 이유로 많은 산악인들의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직 그에 대한 인식이 사회전반적으로 부족한 탓에 여러 가지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히곤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현실에 따른 부작용도 있어왔다.
예를 들면 ‘세계 최고 난이도’라거나 ‘한국 초등정’같은 수식처럼 등반대상지와 그 등반성에 대한 막연한 평가였다. 이것은 아직까지 우리에게 그 산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경험과 정보가 부족한 탓이 큰데, 역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고산거벽등반을 계획하는 사람이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가 하는 방법론적인 문제다. 오로지 내 몸만 존재하는 자유등반의 정신을 좆아 높고 가파른 산을 오르려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러프’처럼 ‘발상의 전환’과 일맥상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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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빙벽등반지로 잘 알려진 소승폭포의 좌우벽에는 인공등반 루트가 5개 있다. |
- 얼마나 침착한가, 얼마나 대담한가
장황하게 늘어놓은 까닭은 김세준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거벽등반가로 불린다.
작년에 캐나다 배핀 섬의 거벽에 신루트 3개를 등반하고 온 그는 올 여름에도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의 메루피크(6310m)동벽에 신루트 등반을 위해 준비 중이다. 길지 않은 등반경력에도 그가 빠른 시간에 그런 이름을 가질 수 있었던 까닭은 지금까지 그가 올라간 길에 단지 사람들의 발자국이 없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는 오르는 방법과 오르는 과정의 일치를 위해 노력해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설악산 소승폭포 좌우벽을 그와 함께 오르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의 섭외 요청에 김세준은 여러 번 사양을 했다.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첫째는 이미 개척된 기존 루트를 오르는 것이 원정대의 훈련 방침에 벗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고, 둘째는 그의 등반이 지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는 것조차 원정대에 별 필요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직 그 높이를 경험해 본적도 없고, 그 벽이 우리 등반 스타일과도 잘 맞아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다녀오면 이제 돈 벌어야죠. 산에만 다니고 살 수는 없잖아요?” 설악을 향하며 “왜 메루피크를 택했는가? 이후에 뭘 할 것인가?” 던진 질문에 그는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을 했다. 상어 지느러미를 닮았다고 해서 ‘메루 샥스핀(Shark Fin)’이라는 별명이 붙은 메루피크 중앙봉에 대한 객관적 사실은 지금까지 16차례 등반 시도가 있었으나 단 한번만 정상을 허락했다는 것이다. 처음으로 그곳에 오른 사람은 러시아의 발레리 바바노프(Valeri Babanov)로 2001년에 동벽 우회로로 단독등반에 성공한 그는 ‘산악계의 오스카 상’으로 불리는 황금피켈상을 수상했다. 바바노프는 2004년 가을 눕체 동봉을 초등해 황금피켈상을 2번 수상한 유일한 사람인데 단순히 그렇게 비교한다면 김세준의 도전은 그가 등반을 다녀와서 먹고 살 고민을 할 정도로 궁색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알잖아요. 그러기 싫은 거.” 지난 등반에서 그는 누구에게도 손을 벌려본 적이 없고 흔한 팸플릿 하나도 만든 적이 없었다. 준비의 과정 또한 등반의 한 덩어리라고 보는 까닭이다.
물론 인정 많은 우리 산악계에서 주변의 도움 없이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러 번의 굵직한 등반 끝에 그가 손에 쥔 것이란 결국 모두 잡을 수 없는 무형의 것들이 아닌지. 날이 어두워져 도착한 한계리 민박집에 자리를 틀고 앉아 내일의 산행을 이야기했다. 설악이 어두컴컴하게 삭는 사이 남설악구조대의 정준교씨가 방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가 제기한 승부의 관건은 ‘물을 건널 수 있는가’였다. 소승폭포의 접근은 작은 계곡을 하나 건너야하지만 며칠 동안 큰 비가 내린 탓에 물이 불어있다면 자칫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빗방울은 가늘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기에 그저 애꿎은 술병이나 잡으며 밤을 보내는 수밖에는 없었다.
이미 훤히 밝아온 창가의 빛에 눈을 뜨니 비개인 날 특유의 상쾌한 냄새가 찾아든다. 구름이 모두 사라진 쾌청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볕 한줄기쯤은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둘러 짐을 챙겨 산으로 향했다. 소승폭포는 여전히 ‘출입금지’다. 관리공단에서 받은 등반허가서를 부적처럼 지니고 금지된 그 선을 넘는다. 다행히 걱정했던 계곡은 이미 물이 모두 빠져나갔는지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었다. 산죽밭을 따라 30여 분 평탄한 오솔길을 지나자 멀리 들리던 물소리가 점점 커지며 드디어 소승폭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앞에 선 세 사람 김세준·이상우·장선태는 무거운 홀백을 벗어놓고 오랫동안 벽을 쳐다본다. 모두 이 벽이 처음이었기에 그 시선은 사뭇 진지할 수밖에 없다. “어차피 등반하는 사람 눈은 다 비슷하거든요. 좌벽에 코스가 3개 있다고 했으니 나라면 저 크랙으로 갔을 겁니다.
” 김세준이 손으로 가리킨 선을 따라가기로 하고 모두 장비를 꾸려 벽 앞에까지 각자 올랐다.
세차게 물이 흘러내리는 소승폭포의 왼쪽 완경사를 따라 30여m를 오르니 그의 예상대로 루트의 시작을 알리는 볼트가 하나 박혀있었다. 소승폭포에는 1995년 고 최승철씨 등이 등반한 허큘리스(5.8/A4)와 2003년 인천 빅월팀에서 등반한 코스 등 총 5개의 루트가 나있다. 바윗길이라고는 하지만 다가서서 보면 마디 종료지점에 쌍볼트 작업이 되어있는 것 뿐 그곳이 길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것은 등반자의 몫이다. 특히 이곳은 초등 이후 등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더욱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오히려 잘된 일이다. 팀의 막내인 장선태가 먼저 장비를 세팅하고 앞줄을 묶는다.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서 북한군 병사로 출연했던 영화배우 송강호가 총을 들고 이런 대사를 한다.
“실전에서는 얼마나 침착한가, 얼마나 대담하게 행동하는가 그게 전부야.” 그 장면을 보며 기자는 무릎을 쳤었다. 그것이 곧 인공등반을 한마디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비에 의존해 오르는 인공등반은 사실 근육의 힘보다 머리와 마음의 힘이 크게 작용한다.
모험의 극복은 순간의 판단력이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장선태의 망치질 소리가 울려 퍼지며 앵글하켄 하나가 벽에 설치되었다. 이제 레다에 첫 발을 올려놓은 그가 한 마디를 마칠 때까지 그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1마디를 등반하는데 길게는 하루가 넘게 걸리기도 하는 인공등반은 기다리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도 중요한 부분이다.
- 세상에서 제일 큰 상어와의 한판 승부
김세준은 지금까지 메루피크를 시도한 팀의 실패 원인을 등반스타일에서 찾는다.
무리한 알파인스타일 시도가 오히려 체력 소모를 크게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느긋이 20일 이상 벽에 매달려 있을 생각을 하며 원정을 준비했다. 1200m의 고정로프를 사용해 벽까지 접근한 후 요세미티에서 사용하는 원푸시(One-Push)스타일로 오를 계획이다.
바바노프의 단독등반도 하단에 고정로프를 사용한 등반이었는데, 어떤 사람들은 그의 등반이 순수한 알파인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나 어쨌든 그는 처음으로 상어 지느러미의 정상에 선 사람이 되었다. 악천후 속에서 포타렛지에 매달려 있는 것이 참기 힘든 고역이라는 것을 김세준은 잘 안다. 지난 2002년 파키스탄 나와즈브락에서도 그는 17일간이나 벽에 매달려 지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등반보다도 기다리는 시간에 팀워크가 나타나겠죠. 그런 상황이 오면 내려가자는 사람도 있을 테고, 올라가자는 사람도 있을 텐데 그걸 어떻게 잘 조율해서 등반을 성공으로 이끄는가가 대장의 몫일 테고.” 김세준은 등반을 매끈하게 잘 할 때까지 반복해 연습하는 것보다 어떻게든 현재에 닥친 상황을 질기게 뚫고나갈 것을 대원들에게 바랬다. 그래서 백번을 추락하더라도 한번 정한 목표까지는 올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장선태가 땅에서 발을 뗀 지 6시간이 넘어가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바닥이 났다. 카세트에 김광석의 노래를 크게 틀어놓았던 이상우는 결국 빌레이시트를 깔고 앉아 졸기 시작했고, 확보중인 김세준은 그리그리에 통과시킨 로프를 습관적으로 조금씩 풀며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키가 작은 장선태는 다음 확보물을 설치할 크랙에 손이 닿지 않아 코퍼헤드를 2개 설치하고도 점핑세트를 꺼내 바위에 훅 포인트를 뚫기 시작했다.
그의 머리위로 멀게만 느껴지는 쌍볼트가 유일하게 이 무료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하나의 목표였다. 아슬아슬하게 훅에 매달린 장선태의 긴장감이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비 그친 후의 소승폭포는 광음을 내며 바닥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완료!” 결국 장선태는 7시간 만에 자신이 정한 목표까지 아무 탈 없이 올랐다. 이제 회수가 남았고 김세준과 이상우는 등 뒤로 해가 스멀스멀 넘어가는 설악의 온기를 받으며 로프에 주마를 걸었다. 김세준의 팽팽한 쿨척(장비 회수용 와이어)에 걸린 하켄이 탄력 있는 소리를 내며 크랙에서 튕겨 나오고 그것은 꼭 그의 낚싯대에 걸린 상어 한 마리와도 같았다. 하루가 저물고, 이제 며칠 후면 세상에서 제일 큰 상어를 찾아 하얀 바다를 오를 그들의 하루도 그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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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서 제일 큰 상어를 찾아 하얀 바다를 오를 그들의 하루를 소승폭포에서 볼 수 있었다. 하강 중인 김세준씨. 사진 이영준. |
- 이탈리아로 간 ‘켄타우르스’
김세준(36세·익스트림라이더 등산학교)씨의 캐릭터는 긴 머리칼과 부리부리한 눈매다.
그래서 그에게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신반마 ‘켄타우르스’가 별명처럼 따라다닌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단지 그의 외형일 뿐이지만 그 때문인지 김세준씨는 얼마 전 이탈리아 장비업체 캐신(CASSIN)사의 카탈로그 모델로 초청받았다. 이탈리아 알프스 주변 볼더에서 10여 일간의 촬영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별 말이 없었지만 처음으로 한국산악인이 세계적인 등반장비업체의 모델이 되었다는 것은 우리 산악계가 그만큼 경쟁력이 커졌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가 모델로 출연한 카탈로그는 올해 말 발행된다.
- 설악산 소승폭포 좌우벽 길잡이
빙벽등반지로 잘 알려져 있는 소승폭포는 좌우벽에서 암벽등반도 가능하다.
길이가 60m~100m에 이르고 경사도 85°~110°로 크랙이 잘 발달되어 있다. 소승폭포에서 암벽등반 시도는 1995년 의정부 샤모니클럽의 고 최승철·김형진씨가 우벽에 허큘리스(5.8/A4)라는 2피치 인공등반 루트를 개척하며 시작되었다. 허큘리스를 비롯해 소승폭포 좌우벽에는 지금까지 인공등반 루트 5개가 있는데 2003년에 인천 빅월팀에서 등반한 루트들이다. 우벽에는 남인우·전재석씨가 등반한 무지개(5.8/A4)가 있고, 좌벽에는 안경채·한기열씨가 인천(5.8/A3), 김성두·이종필씨가 인천상륙작전(5.8/A3), 왕준호·유대웅씨가 미추홀(5.8/A3)을 등반했다. 인공등반의 특성상 소승폭포 좌우벽에는 아직도 등반 가능한 선이 많이 남아있으며 일부는 자유등반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 접근로
한계령 정상에서 한계리 쪽으로 1.5km 지점에 한계령휴게소 표지판이 있는 곳에서 입산금지 표시를 지나 산죽밭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간다. 평평한 길을 약 300m 정도 가면 계곡으로 20m 내려가는 급경사 길이 나오며 물을 건너야 한다. 호우 뒤에는 물이 불어 계곡 횡단이 불가능 할 수도 있다. 계곡을 건너 쓰러진 통나무를 지나 10여 분 오르면 소승폭포 하단이다. 도로변에서 소승폭포까지는 약 30분이 걸린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소승폭포 접근은 어려우며 자가용을 이용해야 한다. 소승폭포 입구에 4대 정도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정식 주차장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령휴게소에 주차하고 걸어 내려오는 편이 낫다.
- 등반정보
소승폭포 좌우벽은 갱기폭포나 미륵장군봉 등 주변 인공등반 대상지에 비해 자연 낙석 위험이 적은 편이고 바위도 깨끗하다. 하지만 개척 이후 거의 등반이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확보물 설치나 등·하강시에는 크고 작은 낙석에 주의해야 한다. 캠과 너트, 버드빅, 나이프, 앵글하켄 등이 고루 쓰이며 코퍼헤드와 점핑세트, 포인트 훅도 필요하다.
각 피치 종료지점에는 쌍볼트가 박혀있다. 소승폭포를 등반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설악산관리사무소 장수대 분소(033-463-3476)에서 허가를 받아야한다. 등반대 전원의 신상명세와 자필 서명이 필요하다. 등반 중에 등반허가서를 휴대하도록 한다.
- 등반장비
거의 모든 요세미티식 인공등반장비가 고루 쓰인다. 로프는 하강을 고려해서 60m 2동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모든 루트에는 중간에 고정확보물이 없으므로 확보장비는 종류별로 넉넉히 준비해야 하며 러프, 버드빅, 크래킹업, 부가부 등 작은 크기의 나이프하켄이 많이 쓰인다. 코퍼헤드도 크기별로 10여 개 이상 준비하는 것이 좋다. 인공등반은 난이도에 따라 1마디 등반에 한나절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다. 등반이 늦을 경우를 대비해 헤드램프와 비상식, 여벌 옷 등을 준비하도록 한다.
- 숙박
한계리 민박집을 이용하거나 장수대 야영장에서 야영 후 아침 일찍 이동하는 것이 좋다.
설악산국립공원에서는 취사·야영이 금지되어있으므로 폭포 아래에서 야영은 피한다.
하지만 호우로 계곡물이 불거나 비상시에 대피해야할 경우 소승폭포를 바라보고 우측에 텐트 2동을 칠 수 있는 야영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