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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봉산 선인봉 ‘어센트길’

행복한 사연 2008. 3. 3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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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활의 미래는 산과 함께 살까나

고전을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고전은 책뿐만 아니라 바위에도 있다.
산악인이자 사진작가인 손재식씨가 국내의 고전적인 바윗길을 매달 찾아간다.
당시 개척의 주역이었던 산악회와 함께 등반하며
개척에 얽힌 옛이야기와 회고를 들려줄 것이다

<편집자 주>.

 

글: 손재식 사진작가 / 이미지 : 청솔

 

잊혀져 가는 것은 슬프다.
그리고 슬픔마저 묻어버리고 마는 세월은 차라리 무섭다고 해야겠다.

미래가 필요치 않은 때가 있었다. 젊음 그 자체로 부러울 것이 없었기에 끝 모르게
산에 빠져들던 시절이다. 그 열정의 시대를 버리고 우린 무엇을 얻었는지…
선인봉에 올 때면 습관적으로 우측 끝에 버티고 있는 오버행을 쳐다보곤 했었다.


그 길은 언제나 손님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붙어있는 모습이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70년대에 산을 올랐던 나로서도 60년대는 물론 이미 1950년대에도 바위를 했던
선배들이 신기하기만 하다. 그땐 사는 일이 지금보다 더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바위에 빠져들었다는 것은 분명 운명적인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오늘 바로 그 오버행에 길을 낸 어센트 회원들과 함께 왔다.
생각해보면 그곳에 시선을 주던 일은 결국 기다림이 아니었는지…

“쩔그럭 쩔그럭” 장비 사리는 소리가 퍼지는 하늘 사이로 희뿌옇게 보이는 햇빛이
여간 고맙지 않다. 비가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줄곧 들었기 때문이다.


33년전 이 길을 개척했던 진경용 회장과 남다른 애정으로 산악회를 이끌고 있는
전완근씨를 비롯해서 이정환, 하용호, 김융기, 박준순, 평촌고 산악부이자
어센트의 꿈나무가 될 서형준, 김태현, 그리고 미국 뉴저지에서 왔다는
유소년 클라이머 정현태 군도 오늘의 현장에 함께 했다. 안전벨트를 매면서
김융기씨가 옛일을 더듬는다.

 

“야 정환아, 너 박쥐에서 떨어졌다고 몽둥이로 맞은 생각 나냐?”
“난 운악산에서 아이젠으로 자일 밟았다고 20대 맞은 기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
“아! 그땐 형들이 특히 완근이 형이 정말 무서웠어.”


그 시절엔 정말 기합 줄 명분이 무지하게 많았다.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일지라도
잘못으로 인정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까. 여하간 지금 우린 몽둥이 세례 없는
밝은 세상(?)에 살고 있다. 그때보다 산에 가는 일이 더 행복한가는 다시 한 번
반문해야겠지만 말이다.


잼과 레이백이 혼합된 첫 마디를 박준순씨가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선배들은 함께 오지 못한 안충근을 못내 아쉬워했다.
어젯밤 소주 한 병을 놓고 옛이야기를 나누다 새벽 2 시나 되어서 잠이 들었고
그는 이후에 도착했다. 일리터 짜리 코냑 한 병이 말끔히 비워져있었던 것은

바로 그와 박준순이 주도하여 마신 술이 분명했다. 술병이 난 톱쟁이 안충근,
그는 결국 캠프를 지켜야만 했다.

 

교리보다 더 좋은 어센트 취지문
술자리는 좋지만 절제하며 마시는 편이어서 꽤나 몸 사린다는 핀잔을 들어온 나도
술과 함께 보낸 시간을 계산해보면 몇 년은 족히 될 것이다.
과음한 다음날 초췌한 얼굴의 친구를 바라보는 것은 조금은 통쾌하지만
그러나 남자로서 할 일은 아니다.
‘친구여 술 처먹다 우린 늙었다…
  친구여 우리의 술은 너무 맑은 누군가의 목숨이었다…’

시인 김홍성이 쓴 시를 생각하면
더불어 취하지 못한다는 것은 언제나 미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술로 인해서 등반을 같이 하지 못한 그를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당연지사다.
준순씨가 40미터의 크랙을 오르는 동안에도 이야기는 끝이 나지 않는다.
과거 이야기가 많아진다는 것은 나이 먹는다는 징후일 게다.

그러나 즐거운 것을 누가 말릴까.


이정환씨와 진경용 회장도 첫 마디를 기다렸다는 듯 오르는 몸짓이 부담스럽지 않다.
이어서 서형준 군이 붙었다. 전완근씨가 지도하는 꿈나무다.
그는 누구보다 어센트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표범에서 떨어지고 얼음에서 떨어진 후 목발 짚고 다시 시작해서 얻은 감정,
그런 것을 아이들한테 가르쳐 주고 싶은 거지. 스쳐 지나가는 인생인데
바위는 좀처럼 변하지 않아. 안식처로 삼을만한 바위는 아이들한테 고향을
만들어 주는 작업이지.”그는 신학을 공부하고 통신을 가르치는 선생님답게
아이들을 단단하게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산을 상대로 자신들의 정열을 불태우며…
목숨을 함께 할 수 있는 형제자매의 우정을 쌓고…
전 세계를 탐험하고 대자연의 아름다운 신비와 파노라마에 잠겨
순수한 생태계의 질서와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어센트산악회 취지문의 한 구절이다.

출처 : 행복산행
글쓴이 : 행복(김윤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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